윈 더 웨스트 : ‘축구장 별미’ 포지션으로 자리 잡다
하지만 말이 쉽지. 신선도가 생명인 유제품으로 미국 같은 큰 땅을 어떻게 잡아먹지? 그러려면 유통부터 저장 인프라까지 확보해야 했어. 하지만 협동조합은 그럴 돈이 없었지.
그래서 패트릭은 가장 가까운 지역부터 공략하기로 해. 틸라무크가 있는 오리건주를 비롯해 ‘미국 서부’를 삼키기로 한 거야. 2014년 이른바 ‘윈 더 웨스트Win the west’ 프로젝트를 시작했지.
지역 슈퍼마켓만 찾아간 게 아냐. 거기선 빠르게 확장할 수 없다고 봤거든. 그보다 한 번에 효과가 클 만한 공간을 찾았어. 그래서 찾은 건? 축구 경기장! 패트릭은 지역 축구팀인 포틀랜드 팀버스Portland Timbers와 먼저 손을 잡았어. 경기장 관중에게 치즈로 만든 음식을 팔기로 했지.
경기장 안에는 ‘틸라무크 매점’을 마련했어. 체다 치즈를 가득 올린 맥앤치즈 핫도그나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요거트를 만들어 팔았지. 심지어 구단의 메인 스폰서가 되어 선수 유니폼에도 로고를 새겼어. 인기는 대단했지. 지역 축구 팬들의 자부심이 됐어.
지역 특산품에서 ‘축구 경기장 별미’로 자리 잡은 틸라무크. 사소한 변화지만 패트릭은 틸라무크가 ‘지역 특산품’ 딱지를 벗어던졌다는 데에 큰 의미를 뒀어.
유제품 광고에 소 대신 ‘전기톱’ 나온 이유
자, 다음은 광고야. 이게 틸라무크를 전국구 브랜드로 만드는 데 결정타를 날렸어. TV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었거든.
먼저 우유나 치즈 하면 떠오르는 광고를 떠올려 봐. 주로 소가 푸른 초원을 걸어 다니며, 여유롭게 풀을 뜯지? 건강한 소가 ‘신선한 유제품’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거야.
패트릭은 그게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어. 유제품 대기업의 생산 방식과도 맞지 않고 말야.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어야 하니, 초원 대신 사육장에서 소를 기르곤 하니까.
틸라무크는 어떻게 했게? 청정 초원 대신 검은 배경 위에서 ‘제품을 마음껏 비틀고 부수는’ 파격 광고를 선보였어. 전기톱으로 아이스크림 통을 반 가르기도 하고, 높게 쌓아 올린 체다 치즈를 도끼로 내려치기도 하지. 6개의 광고 말미엔 이런 문구가 나와.
-Aged with time, not shortcuts(지름길 없이, 오직 시간으로 숙성)
-Farmers, not shareholders(주주가 아닌 농부)
-Extra cream, not extra air(공기*가 아닌 크림)
-Better berries, not bargain berries(할인하는 베리가 아닌 더 좋은 베리)
*아이스크림엔 설탕, 유지방, 공기가 들어간다. 공기 함유량이 높을수록 우유 맛이 은은해지고, 낮을수록 풍부해진다.
메시지가 간결하지? 이들이 내세운 슬로건은 Dairy Done Right이었어. ‘올바르게 만든 유제품’이란 뜻이야.
“틸라무크 협동조합의 농장주들은 110년간 묵묵히 품질을 위해 싸워왔어요. 이들의 열정은 위조될 수 없고, 노고는 속일 수도 없으며, 우리만이 진짜 음식을 만든다는 걸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기존 유제품 광고와 정확히 대조시키는 법을 선택했어요.”
_패트릭 크리테저 틸라무크 전 CEO, 2017년 The Challenger Project 인터뷰에서
2016년에 내보낸 이 광고는 같은 해 최고의 마케팅에 시상하는 ‘에피 어워드Effie awards’ ‘다윗 대 골리앗’ 부문을 수상했어. 대기업에 맞선 도전자의 기발한 광고에 주는 상이야.
“더 강하고 대담하게, ‘도전하는 브랜드’다운 목소리를 내기로 했어요. Dairy Done Right 캠페인이 바로 그 노력이었죠. (…) 우리가 도전자라면, 분명한 신념과 부딪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어선 안 돼요.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며, 우리만의 관점을 적극 표현해야 합니다.”
_패트릭 크리테저 틸라무크 전 CEO, 2017년 The Challenger Project 인터뷰에서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자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해도 자연스러워. 억지로 한다는 느낌이 없거든. 브랜드도 마찬가지야. 교보문고가 매년 손글씨 대회를 열고, 유한킴벌리가 40년 넘게 산에 나무를 심는 것처럼.
패트릭 크리테저도 틸라무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 바로 ‘농부 돕기’야. 틸라무크의 태생이 낙농업협동조합이잖아.
농부들의 노력으로 일군 브랜드가 훌쩍 자라서 미국 전역의 농부를 돕는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행보’가 될 거라 생각한 거야.
“유제품 기업이 농부를 돕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하지만 농부들이 이끄는 틸라무크가 다른 농부를 돕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고 앞으로의 행보를 지지할 거예요. ‘틸라무크라면 그렇게 할 거라 생각했다’는 기대감이 있으니까요.”
_패트릭 크리테저 틸라무크 전 CEO, 2021년 Food52 인터뷰에서
2020년부터 틸라무크는 ‘올 포 파머스All For Farmers’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시작했어. 기후 위기로 농사가 위협을 받는 만큼 우리가 나서서 돕자고 제안한 거야.
고객의 참여 방법은 간단해. 틸라무크 제품을 사 먹기만 하면 돼. 그럼 판매금의 10%는 비영리재단인 미국 농지 신탁American Farmland Trust에 기부하거든. 기부금은 농부들의 농사 보조금과 농지 보전에 쓰인대.
고객이 ‘우리의 땀방울’을 직접 보게 하라
이 정도만 해도 행보가 활발하잖아? 사실 틸라무크에겐 어떤 마케팅보다 확실한 홍보 수단이 더 있어. 바로 협동조합이 출발한 ‘농장 마을’을 365일 열어두고 고객을 환영하는 거야.
왜냐고? 틸라무크 제품이 생산되는 모든 과정을 고객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거든. 틸라무크의 농부들이 정말 갖은 정성을 쏟는지, 어떤 식으로 우유를 수확하고 치즈로 숙성하는지 볼 수 있지. 심지어 입장료도 따로 안 받아.
고객맞이와 같은 운영도 모두 협동조합의 농부들이 기획하고 있어. 치즈 테이스팅부터 농장 가이드 투어, 소 사료 주기 체험까지 준비했지. 후기를 잠깐 볼까?
“관광을 위해 인위적으로 꾸민 곳이 아니더군요. 농장 곳곳에서 농부들이 실제로 작업하고 있었고, 그들은 일하다가도 방문객이 길을 헤매거나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곧바로 달려와 도와줬죠.”
_틸라무크 크리머리 트립어드바이저 리뷰
덕분에 2023년 틸라무크 농장의 방문객은 100만 명을 돌파했어. 덩달아 지역 경제도 살아났지. 틸라무크 카운티 방문객의 총지출액은 최근 3억 달러(약 4360억원)를 넘었대.
아무리 사랑받는 브랜드라도 고객을 일터로 부르긴 쉽지 않잖아? 하지만 패트릭은 알고 있었어. 사람들이 틸라무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맛’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농부들의 노력’ 때문이란 걸.
어쩌면 농장 개방은 틸라무크에게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틸라무크는 ‘일상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를 추구해요. 여기서 프리미엄은 단지 ‘더 비싼 제품’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농부들이 쏟은 수백 시간과 수천 리터의 땀방울을, 소비자도 알아줄 거라는 믿음의 라벨이죠. 그래서 우린 왜, 어떻게,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가감 없이 전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설득될 수 있으니까요.”
_패트릭 크리테저 틸라무크 전 CEO, 2023년 포브스 인터뷰에서
1. 소비자는 때로 매끈한 제품보다, ‘사람의 흔적’이 녹은 제품에 더 끌린다. 틸라무크는 농부가 듬성듬성 자른 듯한 슈레드 치즈로 인기를 끌었다.
2.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틸라무크는 협동조합이라는 정체성을 살려, 농부를 돕는 브랜드로 자리 잡아 소비자의 응원을 받는다.
3. 내가 쏟은 노력과 결과물에 자신이 있다면, 대담하게 알려라. 틸라무크가 18kg 치즈 덩어리를 창립 기념일 한정판으로 파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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