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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함께 춤을 : 화를 억누르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나 자신’이다 | 250208

by 해적거북 2025.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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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함께 춤을 : 화를 억누르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나 자신’이다
악마와 함께 춤을 : 화를 억누르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나 자신’이다

 

감정은 ‘통제할 수 없는 신호’다

우린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을 느껴요. 맛있는 도넛을 먹을 땐 기분 좋고, 기다리는 버스가 오지 않으면 화가 나죠. 

그런데 가끔은 나쁜 감정이 맹렬하게 휘몰아치기도 해요. 하루를 망칠 때도 있죠. 못 참고 밖으로 터뜨리면, “난 감정 기복이 심한가 봐”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합니다.

저자 토마슨은 “그러지 말라”고 말합니다. 나쁜 감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나쁜 감정을 ‘잘못 사용’하는 게 문제라 생각해 보자는 거죠. 

그는 감정을 ‘내 삶의 소중한 신호’라 정의해요. 눈앞에 닥친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삶을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지 알려주는 힌트라는 거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초조하다면? 준비가 부족했단 걸 감정이 먼저 눈치챈 걸 수도 있어요. 반대로 글 쓰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다면, 이 일이 나와 잘 맞는다는 걸 감정이 먼저 알려주는 거죠.

 

“감정은 일종의 육감과 같아서 우리는 감정을 통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 감정을 통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인식도 알 수 있다. (…) 우리는 미처 뭔가를 깨닫기도 전에 감정이 먼저 그걸 깨달을 때도 있다.”_19p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건 미신이다

저자는 말해요. 이처럼 중요한 신호를, 우린 자주 ‘통제’하려 한다고. 감정은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한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감정을 통제하는 사람이 성숙하고 어른스럽다 믿고요.

하지만 저자는 고개를 젓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감정을 스위치처럼 끄고 켤 수 있다는 믿음은 ‘미신’이라고요. 감정은 예상한 대로 찾아오지 않으니까요. 

가령 시험에서 몰래 부정행위를 했다면? 처음엔 괜찮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이 스며들 거예요. “난 죄책감을 안 느낄 거야”라고 결심한다 해서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겠죠.

감정과 이성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 것도 착각이에요.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할 때도 100% 이성만으로 판단하지 않아요. 새로운 도전을 결정할 땐, ‘한번 해봐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라는 감정이 선택을 이끌기도 하니까요.

 

“또 다른 숨겨진 가정은 감정이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 하지만 재채기가 합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인가? (...) 이성과 감정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감정은 논리적일 수 있고 논리는 감정적일 수 있으며 특히 인생의 중대한 선택을 고민할 때는 더욱 그렇다.”_60~61p

 

저자는 제안해요. 감정을 무조건 통제하려 하기보다, 그것과 함께 잘 살아가는 법을 배우자고요.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을 밀어내기보다, 그 신호를 알아채고 제대로 활용하는 게 더 낫다는 거죠.

 

“감정이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혼란스럽게 하는 까닭은 우리가 감정의 일부는 통제할 수 있고 일부는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감정을 TV 끄듯이 ‘꺼버릴’ 수도 없다. (…)

감정은 우리의 일부다. 하지만 감정 그 자체도 삶을 지니므로 우리는 감정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_22~23p

 


 

이제 우린 알게 됐어요. 부정적인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고, 오히려 나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신호’라는 걸요.

하지만 깨닫는다고 잘 다룰 수 있는 건 아니죠. 자칫하면 부정적인 감정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전 저자가 알려주는 팁을 세 가지로 정리했어요. 첫째. ‘어떤 감정도 당장 해결될 순 없다’는 걸 명심하는 거예요. 

보통 분노나 질투를 느끼면, 사람들은 ‘지금 당장’ 그 감정에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애써 무시하거나, 바로 남에게 표출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저자는 조언해요. “조금 느리게 반응해 보자”고.

 

“우리는 분노에 너무 빨리 반응하고, 서둘러 자신을 다독이며, 단지 물건을 부수거나 사람을 때리는 것이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특히 가만히 앉아서 분노를 솔직하게 탐색하는 데 서툴다. 이 모든 건 분노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분노를 느낄 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다.”_147p

 

저자는 당장의 ‘화풀이’ 대신, 가만히 서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해 보라고 해요. 예를 들어, 옆집 이웃이 근사한 차를 사서 부럽다면, 그냥 ‘질투 난다’고 말해보라는 거예요.

 

“‘옆집 차가 부럽다’라고 소리 내 말해보라. 그렇게 말하고 나서 멈춰라. 설명도 질책도 하지 마라. 그 말을 듣고 몸서리가 쳐지더라도 자신을 위로하지도 자책하지도 말고 그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라. 고통스럽거나 불편하더라도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느껴라. (…) 

화풀이는 불쾌한 감정에 대처하는 방식의 일환이며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당신은 가만히 앉아서 그간 받은 상처와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_126~127p

 

분노를 인정하고 곰곰이 생각하면, 내 진심을 찾을 수 있어요. 이웃보다 더 물질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 또는 좋은 차를 갖는 게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라는 걸 깨닫는 거죠.

화가 난 이유를 깨닫는다면? 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어요. 더 좋은 차를 얻으려 노력할 수도, 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단 걸 깨닫고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을 수도 있고요. 

 

“우리가 해롭고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나쁜 감정이 우리에게 말 걸어오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 부정적 감정과 잘 지내는 핵심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솔직해지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그런 감정을 왜 느끼는지 생각해 보라. 그 감정이 당신에게 중요한 무엇을 말해주는가? (…) 시기심은 당신이 원하는 수준의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고통스러운 깨달음이다.”_128~129p

 


 

두 번째 팁, 부정적인 감정을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로 바라보는 거예요.

우린 흔히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곧장 타인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게 하면 난 아무런 책임도 없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내가 기획한 일이 기대만큼 성과가 안 나왔을 때,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거죠. 고객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라 치부하거나, 중간에 방향을 바꾼 상사의 문제라 생각하는 거예요. 잠깐은 위안이 될 거예요. 그게 편하니까요. 

하지만 이건 두 가지 측면에서 좋지 않아요. 문제의 진짜 원인을 찾을 수 없게 되고, 마음속에 ‘악의’만 남아 나를 갉아먹죠.

 

“(자신 이외의) 악당을 찾아내면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고 누구도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는 가능성에 직면하지 않아도 된다. (…) 자기 성찰은 어렵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이며, 사람들은 설령 자기 성찰을 하는 법을 배우더라도 제대로 배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_161p

 

무조건 내 탓을 하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남 탓하기 전에, 한 번 멈춰서서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자는 거죠. 그래야 ‘나쁜 감정’이 생겨난 진짜 이유를 살피고, 그걸 내 성장을 위한 연료로 삼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판타지 세계를 구축해서 나쁜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없으며,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그 판타지 세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 분노는 당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 나타나지만, 실제로 누군가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음을 뜻하진 않는다. (…)

분노에 솔직하게 대한다는 건 반드시 바람직한 종류의 분노만 느껴야 한다거나 분노에 항상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좋은 분노도 나쁜 분노도 없다. 그저 분노가 있을 뿐이다.”_164~166p

 


 

마지막으로 저자는 강조해요. “우린 조금 더 자기중심적일 필요가 있다”고요.

고개를 갸우뚱하실 수도 있어요. 보통 ‘자기중심적’ 태도는 우리가 피해야 할 것으로 여기니까요. 하지만 저자는 말해요.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제대로 된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요.

사회는 곧 ‘규범’의 영역이에요. 내 감정이 다수의 합의나 의견에 어긋나면, “내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자연스레 생각하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이 오랜 시간 한국 사회를 비추는 것처럼요.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제대로 자기중심적’이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위대한 일을 해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딛고, 개성을 드러내면서요.

저자는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철학자 헨리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를 소개해요. 그는 어느 날 호숫가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하며,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교양서 『월든Walden*』을 쓴 작가예요.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를 훌륭한 위인으로 생각하죠.
*‘월든’ 호수에서의 자급자족 생활을 기록한 에세이. 일과 자립에 대한 철학을 담았으며, 현재도 미국의 고교 교양서로 읽힌다.

하지만 정작 그 당시 사람들은 그를 괴팍한 사람으로 취급했어요.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맹렬히 거부하고, 옳다고 믿는 걸 끝까지 밀고 나갔거든요.

 

“소로는 이상한 태도와 거친 행동으로 마을 사람들을 화나게 했는데 이를테면 투표나 마을 회의 참석, 세금 납부를 거부했다. 숲속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할 무렵부터 콩코드 사람들 사이에 그는 게으르고 무능하며 괴팍한 건달로 통했다. 하지만 소로는 콩코드의 사회생활에 편입되는 데 관심이 없었다.”_261p

 

자신의 감정이 세상과 부딪칠 때, 소로는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반발심을 동력 삼아 자신의 길을 걸었죠. 그렇게 자신의 모난 본성까지 끝까지 파고들며, ‘삶의 골수’까지 살아낼 수 있었죠.

 

“소로는 그 이상을 원했다. ‘나는 깊이 있게 살며 삶의 골수를 전부 빨아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일하고 살기 위해 숲으로 갔다. (...) 

소로는 자신의 야생적인 부분을 단순히 받아들이거나 용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걸 사랑한다. (…) 내면의 야생성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더 높은 정신적 측면과 마찬가지로 자아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누구나 내면에 야생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그곳이 바로 나쁜 감정이 살아가는 장소다.”_261,263p

 


 

마치며 : ‘싫음’에서 삶의 동력을 발견하자

예전에 어떤 유명인의 인터뷰에서 고개를 끄덕인 기억이 있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죠. 

 

“삶에서 좋아하는 걸 추구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싫다는 감정을 순순히 인정하고, 이를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동력으로 만든다는 게 인상적이었죠. 

전 생각했어요. 나는 싫어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NO를 하며 살고 있었을까? 그 순간순간을 모면하려고 감정을 재빨리 덮어버리기만 했던 건 아닐까? 하고요.

롱블랙 피플도,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그것을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않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이 내게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또 그 감정을 삶의 동력으로 삼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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