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가 꾸물거리는 이유가 되기도 해요. 정확하게는 ‘사회부과 완벽주의자Socially Prescribed Perfectionist’들이 꾸물거린다고 합니다. 부모님이나 직장 등 사회로부터 오는 기대를 충족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죠. ‘후천적 완벽주의’랄까요?
“완벽주의자들은 잘하고 싶어서 꾸물거려요. 완벽한 준비를 하느라 시작이 늦거나, 디테일에 집착하다 완성을 못 하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에요. 실패를 받아주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좀 더 흔히 보이는 유형이죠.”
예를 들면, 보고서를 쓰는데 종일 조사만 하는 거예요. 완벽한 보고서를 쓰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그러다 보고서를 쓸 시간이 부족해져서 엉망인 결과물을 내고 말죠.
이들은 일하기 좋은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기도 해요. 피곤하지 않고, 마실 커피도 옆에 있고, 자료도 정리됐고, 방해하는 사람도 없어야 하죠. 그래야 보고서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교수는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해요.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해도 완벽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요. 변수가 넘쳐나는 게 세상이니까요. 그걸 기다리다 시작만 늦어질 뿐이죠.”
그는 빠르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스몰 액션small action’을 제안했어요. 내가 일하기 좋은 순간을 기다릴 게 아니라, 그걸 만드는 작은 행동을 먼저 하라는 뜻이었죠.
“우리는 가만히 있다가 동기 부여를 받아서 행동하는 게 아니에요. 그전에 동기 자체를 유도하는 스몰 액션을 해야 하죠. 15분 안에 끝낼 수 있는 행동들입니다. 이게 있어야, 동기를 얻고 내가 목표한 행동까지 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볼게요. 이 교수는 자신이 인터뷰 준비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들려줬죠. 그의 스몰 액션은 ‘메신저로 받은 사전 질문지 파일을 컴퓨터로 옮기는 것’이었어요. 그다음 그 파일을 프린트했고요. 질문지를 뽑으며 자연스레 문항까지 살펴볼 수 있었죠.
“꾸물거리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행동이 아니라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행동이에요. 우선 15분만 움직여 보세요. 자동차 시동을 걸듯 작은 행동부터 하면, 90분짜리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이동귀 교수는 말해요. “작심삼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과학적인 근거도 있다고 덧붙이죠.
“인간은 ‘변화’ 자체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입니다. 아무리 몸에 좋고 커리어에 좋다고 해도 새로운 일을 할 땐 스트레스를 받죠. 여기에 맞서기 위해 몸에서 만드는 호르몬이 아드레날린Adrenaline과 코르티솔Cortisol이에요. 일종의 스트레스 방어 호르몬이죠*.
문제는 이들의 지속 시간이 3일 정도란 거예요. 사흘이 지나면 스트레스를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이걸 피할 방법은, 새로 도전한 일을 포기하는 거예요. 작심삼일을 받아들이는 거죠.”
*아드레날린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몸이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에너지를 더 잘 쓰게 만든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에 대응해 몸의 기능을 유지하고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럼 궁금해져요. 어떻게 해야 작심삼일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이 교수의 답은 간단해요. “작심삼일을 반복하라” 그리고 4일째엔 쉬라는 말도 덧붙였죠.
“어차피 4일째면 스트레스 방어 호르몬이 떨어지니, 쉬면 됩니다. 달리기를 시작했다면,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일단 달리세요. 그리고 목요일엔 스트레칭만 하는 거죠.
금요일엔 다시 달리기 시작해요. 다만, 루틴을 살짝 바꾸면 더 좋아요. 새로운 곳에서 뛰는 식으로요. 몸이 새로운 변화를 만났다고 느끼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스트레스 방어 호르몬을 분비시키며 작심삼일을 두 달 정도* 반복하면? 습관이 될 거예요. 물론 인내심도 함께 필요하겠죠.”
*런던대학교 심리학과 연구에 따르면, 좋은 습관이 형성되는 데는 평균 66일이 걸린다고 한다.
“모든 걸 바꾸겠단 다짐은 성공률이 낮다”고 했죠.
“‘이젠 꾸물거리지 않겠다’와 같은 결심은 효과적이지 않아요. 꾸물거리는 사람들은 자꾸 삶을 통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이걸 문제라고 여기면 더욱 그렇죠.
습관은 정말 다루기 어렵습니다.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 내 삶의 루틴을 행동 단위로 잘게 쪼개 분석해 봐야 해요. 작은 행동을 하나씩 바꿔보며 습관을 깨트리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매일 퇴근길에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죠. 이런 습관을 깨기 위해 바꿀 수 있는 행동은 여러 가지예요.
집에 가기 전에 사무실에서 양치질을 하거나, 편의점이 없는 길을 골라 퇴근할 수도 있죠. 이렇게 작은 행동을 바꾸며 단단해진 습관에 균열을 내보는 거예요.
이 교수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게 하나 더 있어요. 바로 “꾸물거림 때문에 좌절감에 빠지지 말라”는 것. 열 번 중 한두 번이라도 계획대로 움직였다면, 그걸로 만족해 보라는 거예요!
“10번 중 7~8번은 상황에 맞춰 꾸물거릴 수 있어요. 그렇게 지내는 게 더 행복한 사람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러다가 30분 일찍 집을 나섰다거나, 미뤘던 청소를 먼저 했다는 식의 행동을 했다면, 거기에 의미를 둬보세요. 내게 또 다른 선택지가 생기는 걸 즐기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교수는 변화의 의미를 다시 정의했어요. 변화는 어떤 것으로 ‘대체’하는 게 아니라, ‘선택을 늘리는 것’이라고 했죠.
“변화는 한 번에 A에서 B로 바뀌는 게 아니에요. 그건 대체죠. 그보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Change is not a replacement but an addition(변화는 대체가 아니라 더함이다).
변화는 어떤 상황에서 내가 하던 행동이 A라면 A1을 추가하고, A2를 추가하는 것과 같아요. 카드 게임을 한다고 하면, 플레이할 수 있는 카드를 늘리는 거죠.”
결국 꾸물거림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라는 게 이 교수의 말이에요. 그 선택지를 내가 골랐다면, 내가 원해서 꾸물거린 게 되니까요. 즉,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살 수 있는 거죠!
“우리가 살면서 ‘절대 꾸물거리지 않는다’는 선택지만 남기면, 또다시 자기 결정성을 잃고 살게 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기 전에 일을 미루지 않으려는 의도부터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꾸물거리는 습관을 바꾸고 싶은 이유는 뭘까요.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서겠죠. 그렇다면 모든 걸 한 번에 바꾸려 하지 마세요. 그냥 ‘다른 행동’을 하나씩 내 선택지에 추가하며 삶을 다채롭게 만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결국 꾸물거리는 습관을 고치는 일도 어렵고 오래 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걱정하는 제게, 이동귀 교수는 이렇게 말했어요.
“꾸물거리는 습관을 바꾸기 귀찮나요? 그렇다면 아직 필요성을 못 느낀 거겠죠. 그럼 그냥 변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제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그렇게 하렴’이에요. 낭떠러지가 있다고 여러 번 말해줘도 가고 싶은 사람은 가요. 안 듣죠. 떨어져서 다쳐보면, 다음엔 말하지 않아도 그 길을 피합니다.
결국 나를 바꾸는 건 아무도 해줄 수 없어요.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죠. 내가 꾸물거려 보고 힘들다는 걸 이해하고 느끼는 게 중요하죠. 꾸물거리고 싶으면 더 꾸물거려도 됩니다. 변하고 싶으면 그때 변하면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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