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 1000명 미만의 채널은 무조건 웃겨야 한다
디비피아와 포엠매거진은 어떻게 초기 팔로워를 모았을까요? 맨 처음 둘은 시와 논문을 본격 소개하는 대신, ‘유머 계정’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와 논문에 요즘 유행하는 밈을 섞어 한눈에 들어오게 했죠. 이들의 대화를 들어볼까요?
배동훈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선 밈을 수집하기가 쉬워요. 저는 거기서 요즘 밈부터 모았어요. 밈은 모두가 가볍게 공감하고 웃을 수 있지만, 시는 이해 가능한 ‘소수’를 위한 장르잖아요. 대척점에 있는 둘을 섞으면, 사람들이 시를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어요.
가령 ‘아빠 씻는데 단수됨’이라는 제목으로, 몸에 비누거품 묻힌 채 멍때리는 아빠 사진이 있다면? ‘오늘의 시집 추천’을 큼직하게 박고 고선경 시인의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를 추천했죠.
폼 미쳤다라는 말이 유행할 땐 ‘poem 미쳤다’라는 문구를 들이밀고요. 1차원적인 유머를 통해, 사람들이 ‘여기 뭐 하는 곳이지?’라며 궁금하게 하고 싶었어요.
구수담 저는 논문 첫 페이지가 그 자체로 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흥미롭거나 호기심을 부르는 논문 제목이 많으니까요. 「썸타기와 어장 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 「먹방시청은 비만에 영향을 미치는가?」 같은 논문 추천 글을 X와 인스타그램에 매일 2개씩 꾸준히 올렸어요.
말장난에 가까운 게시물들, 시와 논문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건 아닐까요? 둘은 “재미부터 챙겨야 그다음이 있다”고 답해요.
배동훈 이제 막 시작한 계정을 팔로우할 이유가 뭘까요? 전 8할이 재미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장황하게 채널 목적과 운영 계획, 정체성을 소개해도 사람들은 관심 갖지 않아요. 먼저 눈에 들어와야 하고, 그러려면 웃기는 게 확실한 방법이죠.
구수담 ‘내가 무엇을 전달하겠다’고 주장하는 건, 인지도를 얻은 다음에야 가능한 것 같아요. 전 논문 추천 게시글에 어떤 사족도 달지 않았어요. 재밌는 제목과 저자, 연도를 써놓는 게 다였죠. 저자의 의도가 곡해되는 걸 피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럼 사람들이 부담 없이 댓글을 달아요, ‘이거 봐봐’, ‘이거 교수님 논문 아냐?’라면서요. 누군가 한마디라도 더 꺼내게 만드는 게 초기엔 더 값진 것 같아요.
배동훈 맞아요. 결국 재미가 먼저예요. 저는 인스타그램 운영을 종종 ‘음악 장르’에 비유하곤 해요. 밴드 음악에 이제 막 관심을 가진 친구에게 헤비메탈부터 추천하지 않잖아요? 데이식스Day6나 혁오같이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밴드를 알려주죠.
인스타그램도 똑같은 것 같아요. 콘텐츠에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반응은 크게 와요.
소통 : 사람들이 시를 쓰고, 논문을 꾸미게 하라
두 채널은 처음부터 가파르게 성장했어요. 디비피아의 팔로워는 한 달 만에 7000명에서 1만4000명으로, 포엠매거진은 두 달 만에 0명에서 1만 명으로 뛰었죠.
두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음 단계를 준비했어요. 일명 ‘팔로워 참여형 콘텐츠’. 팔로워가 콘텐츠를 만들게끔 끌어당겼죠. 댓글을 다는 수준이 아니라, 같이 게시물을 완성하는 수준으로요. 운영자와 팔로워가 함께 놀 ‘놀이터의 크기’를 키운 거죠.
배동훈 팔로워 숫자가 1만5000명을 넘겼을 때, 처음으로 ‘시 백일장’이라는 참여형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시를 읽다 보면, 한번 쓰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거든요. 자유 주제로 시를 써서 보내면, 그중에서 제가 마음에 드는 시 3편을 뽑아 소개하겠다는 거였죠. 일종의 ‘독자의 시’를 콘텐츠로 풀어낸 거였어요.
공지를 올리고 일주일 만에 무려 500편 넘는 시가 들어왔어요. 웬만한 신춘문예 투고보다 많은 수준이었죠. 자신의 트라우마나 상처를 대범하게 시로 써낸 분들이 많다는 게 놀라웠어요.
구수담 저희는 (팔로워에게) 논문을 쓰게 할 수는 없으니,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콘텐츠로 소통을 시작했어요. 팔로워가 자기 고민이나 관심사를 쓰면, 거기에 맞는 논문을 찾아 스토리에 공유하는 식이었죠.
*인스타그램 스토리 내에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기능. 게시자가 스티커에 질문을 써서 스토리에 올리면, 팔로워가 답할 수 있다.
가령 ‘하루 종일 아이패드 하니까 머리가 아파요 왜 그러죠?’라는 질문에, 제가 「자업자득自業自得 : 누가 풀어야 하나?」라는 글을 공유한 거예요.
반응이 온다고? 사람들 손에 뭔가를 쥐게 하라
팔로워와의 소통은 공유와 DM에서 그치지 않아요. 두 채널은 팔로워들과 서로 ‘만날 계기’를 만드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였죠.
이때 택한 전략, ‘수집욕’을 자극하는 거였어요. 디비피아는 가방에 달고 다닐 ‘초미니 논문 키링’을, 포엠매거진은 ‘외계인 마스코트 인형·키링’을 만들었죠.
구수담 논문이 의외로 ‘수집욕’을 부르는 거 아세요? 실제로 연구생 중에도, 다른 사람의 논문을 컬렉션처럼 모으는 분이 많아요. 논문을 쓸 때면 내 것 빼고 다 재밌게 읽히거든요.
독자들도 나만의 논문을 갖고 다니면 좋겠다 싶었어요. 길에서 논문 키링을 우연히 보면, ‘너도 디비피아? 나도 디비피아!’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죠. 그래서 손톱만 한 투명 아크릴에 초미니 논문을 담아 고리에 연결했어요. 가방에 달 수 있도록요.
사실 키링에 넣은 논문 제목은 모두 가짜예요. 저작권 문제가 있거든요. 이때도 독자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했어요. ‘논문 제목 짓기 이벤트’에서 선정된 제목만 넣었죠. 「하츄핑과 시진핑에 의한 경제적 영향 비교 분석」 같은 것들요.
배동훈 전 우연히 만든 캐릭터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당시 외계인 캐릭터와 함께 ‘외계인 침공시 OOO이 먼저 잡아먹힌다’라는 밈이 유행했거든요. 빈칸에 ‘시집 안 읽는 사람’을 넣어 티셔츠에 프린팅했는데, 언제부턴가 팔로워분들이 저를 그냥 ‘외계인’이라 부르더라고요.
사람들이 외계인 캐릭터에 관심이 많구나, 라는 수요를 확인하고 바로 굿즈화시킨 거죠. 하루 만에 300만원 어치의 티셔츠가 팔렸어요. 그 뒤로 스티커와 인형, 키링을 만들고 팝업까지 열었고요.
변주 : 실험과 변덕을 헷갈리지 말자
하지만 아무리 재치 있는 컨셉도, 시간이 지나면 식상해지기 마련입니다. 팔로워가 “질렸다”고 댓글 달지 않아도, 이미 공유나 좋아요 지표가 떨어지는 게 보이니까요.
그럼 두 사람은 채널의 지루함을 덜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배동훈 일단 전 실험을 밥 먹듯이 해요. 마트 시식 코너 직원처럼요. 예를 들어 시 구절에 밑줄을 쳐봤다가도, “밑줄 친 구절에만 눈이 간다”는 댓글이 달리면? 다음 콘텐츠에서 밑줄을 바로 빼죠.
중요한 건, 내가 조금이라도 ‘팔로워를 알겠다’고 확신한 순간 도태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콘텐츠로 계속 말을 걸어야 해요.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이런 시는 재밌나요?”라면서요. 팝업을 준비할 때도 팔로워에게 묻고 그 반응에 맞춰 발주 수량을 결정해요.
구수담 중요한 건 ‘변덕’과 ‘실험’을 헷갈리지 말아야 한단 거예요. 이 포맷이 안 통한다고 다른 포맷으로 곧장 넘어가면 계정에 일관성이 사라져요.
어떤 사람이 우연히 자기 취향의 콘텐츠를 봤는데, 올린 이의 계정에 가니 취향에 맞는 게 없다? 그럼 그대로 떠나요. 계정주가 날 다시 재밌게 해줄 거란 기대감이 들지 않거든요.
그래서 전 콘텐츠 실험을 한번 시작하면, 미련 없을 때까지 변주를 주곤 해요. 제목부터 포맷, 촬영 장소까지 바꿔가면서요.
예를 들어 2024년 4월 유튜브에 논문 한 편을 다 읽는 ASMR 영상을 올린 적이 있어요. 조회수가 2700회 가까이 찍히길래 희망을 봤죠.
그런데 지표가 점점 빠져서 콘텐츠를 조금씩 바꿔봤어요. 제목에 ‘수면 유도’를 붙이거나, 팔로워 1명당 1초씩 논문을 읽겠다고 하거나, 노래방에서 읽기도 했죠. 두 달을 해본 뒤에야 안 되겠다 싶어 손 털고 다른 포맷을 고민했죠.
배동훈 결국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잖아요. 저도 공감해요. 그래서 전 시작할 때 팔로워 수 별 ‘콘텐츠 포맷 계획’을 세워뒀어요.
1000명 이하의 작은 채널일 땐 유머 콘텐츠만 올리기. 1만 명이 넘으면 채널의 목적인 ‘시집 추천’ 올리기. 1만5000명이 넘으면 팔로워들과 소통할 행사 열기 같은 식으로요. 재미 → 의미 → 관계 만들기로 차츰 진화하려는 거였죠.
‘주제’는 좋아하는 걸로, ‘소재’는 남이 좋아하는 걸로 풀어나가자고요. 그럼 나도 꾸준히 이어갈 수 있고, 사람들도 계속 내가 만드는 것을 향해 찾아오실 거라 생각해요.
전 포엠매거진 배동훈 씨의 조언이 인상 깊었습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내 팔로워를 알겠다’고 확신하면, 그 순간 도태된다는 것. 그래서 계속 콘텐츠로 “여러분은 뭘 좋아하시나요?” 하고 말 걸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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