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너머의 리사는 편안하게 미소 짓고 있었어요. 인사를 건네자, “인터뷰에 늦지 않으려 스케줄을 메모해 뒀다”며 너스레를 떨었죠. “질문하세요, 들을 준비가 됐어요”라는 말로 이야기는 시작됐어요.
먼저 그에게 ‘기억을 잘하는 법’을 알고 싶다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죠.
“사람들은 기억이 완벽해야 한다고 기대해요. 하지만 뭔가를 깜빡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죠. 심지어 우리가 기억을 잊는 ‘망각’은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우리에게 무엇이 의미 있는지 알려주거든요.”
정리하면, 기억은 뇌에 모든 걸 기록하지 않아요. 우리가 신경 써서 주의를 기울인 것만 저장하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우리는 백화점에 갔을 때 주차한 자리를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잖아요? 이건 잊어버린 게 아니에요. 위치에 집중하지 않아 처음부터 기억을 ‘안 했을’ 확률이 높죠.
“우리가 뭔가를 기억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뇌가 주의를 기울일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을 때 일어나요. 그러니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어요. 기억을 못 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일단 편한 마음을 먹는 게 필요하죠.”
또 리사는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말도 오해라고 지적했어요. 왜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의 이름을 잊으면 걱정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걸로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는 뜻이었죠. “원래 고유명사는 뇌 구조상 쉽게 기억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말이었어요.
“뇌가 뭔가를 기억하고 꺼내는 기능은 평생 유지됩니다. 알츠하이머병을 겪는 게 아니라면, 기억력은 떨어지지 않아요. 다만 나이가 들면서 뇌의 처리 속도가 느려질 수는 있죠.
만약 차 키를 냉장고에서 발견하거나, 차 키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잊었다면 병원에 가봐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단순히 차 키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건 정상적인 일이죠.”
그럼 우린 왜 기억하려고 한 것도 잊는 걸까?
‘우리의 건망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건 이해했어요. 하지만 궁금증이 남았죠. 제가 신경 써서 기억하려 한 것도 잊는 경우가 더러 있거든요.
그래서 물었어요. “저는 더 많은 기억을 간직하고 싶은데, 자꾸 잊어버린다”고요. 이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리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어요.
“우리의 뇌는 원래부터 꽤 많은 기억을 자연스럽게 잃도록 설계*돼 있어요. 1년 중에 통째로 기억하는 날은 고작 8~10일 정도죠. 대부분의 날은 잊히고요. 그나마 기억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게 당연해요.”
*뇌의 저장 용량은 약 250만GB로, 영상을 300년 연속 볼 수 있는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뇌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뉴런 간 연결(시냅스)을 강화하거나 정보를 가지치기하며 정리한다.
반가운 답은 아니었어요. “까먹는 건 당연하다”는 것처럼 들렸거든요. 하지만 리사는 이게 마냥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어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 뇌가 중요하지 않은 일상을 모두 다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요? 대신 뇌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순간’만 남겨요.
마치 필터와 같은 역할을 하죠.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여유를 만드는 거예요. 즉, 뇌가 하는 ‘망각’은 더 나은 내일을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겁니다.”
결국 망각은 우리에게 중요한 기억을 남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에피소드나, 전에 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 같은 걸 남기는 작업이죠. 부모님의 결혼 30주년을 기념한 가족 식사나, 친구들과의 우정 여행 같은 게 더 선명하게 남는 이유죠.
리사는 이렇게 남아 있는 기억을 추리면, 우리가 어떤 걸 의미 있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어요.
“내가 세상에서 보는 모든 걸 적는 화이트보드가 있다고 상상해 볼까요? 만약 모든 게 지워지지 않는다면, 그 위엔 온갖 선이 겹쳐져서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거예요.
여기서 뇌는 기억과 망각으로 중요한 건 남기고, 필요 없는 건 지워줍니다. 달리 보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걸 알아서 정리해 주죠. 지금 당신의 화이트보드에 어떤 게 남아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게 곧 당신의 이야기가 될 겁니다.”
더 오래 남기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이렇게 하라
그럼 우리가 원하는 기억을 잘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리사는 두 가지를 이야기해요. 기억해야 할 순간에 ‘맥락’을 주거나, 그 순간을 일부러 ‘반복’하면 된다고 하죠.
① 향수를 뿌리고, 물을 마시며 ‘맥락’을 부여하라
리사는 가장 쉽게 기억을 불러내는 단서로 ‘맥락’이 있다고 소개했어요. 즉, 어떤 걸 기억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면 그와 비슷한 맥락을 만들어 두라는 거죠.
예를 들면 이런 게 있어요. 여행 중 자주 듣던 노래를 다시 들으면 그때의 장면이 떠오르곤 하죠. 비슷한 향을 맡았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현재 느낀 감각이 기억을 오래 떠올리게 돕죠.
암기 시험을 잘 보는 비결도 비슷해요. 만약 영어 단어를 암기할 때마다 따뜻한 라떼를 한 잔 마셨다면, 시험 보기 전에도 똑같이 따뜻한 라떼를 마시면 도움이 된다는 거죠. 이런 작은 단서가 기억의 맥락을 만드는 거예요!
“기억은 주변 상황이나 맥락에 영향을 받아요. 기억을 만들 때와 비슷한 상황이 되면, 뇌는 쉽게 이전의 상황을 떠올리죠. 뇌가 한 부분에 불을 켜면, 그와 연결된 기억의 패턴도 함께 활성화거든요.”
② SNS에 ‘기억 단서’를 남겨, 기억을 되새겨라
사실 기억을 잘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은 ‘반복’이에요. 흐릿해지기 전에 다시 기억하고 되새기면서 뇌의 신경 패턴을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이죠.
그럼 반복을 잘하는 방법을 아는 게 중요하잖아요? 리사는 ‘기록’을 강조해요. 기억하고 싶은 걸 부지런히 기록하고, 그걸 자주 들여다보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오늘 친구와 식사를 하다가 재밌었던 농담이 있었다면? 인스타그램에 친구와 찍은 사진과 함께 그 농담을 글로 남기는 거죠. 여기에 장소와 날짜까지 더하면 기억할 단서는 더 풍부해져요.
“SNS 기록은 그날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는 단서가 될 수 있어요. 사진이나 글을 다시 볼 때마다 뇌 안에서 기억과 연결된 신경 회로가 다시 움직이거든요. 이걸 반복할수록 기억은 더 강해지고요.
전 SNS가 유용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사진을 찾으려면 방구석 어딘가에 있는 앨범을 뒤져야 했어요. 지금은 그 기억을 손바닥 안에서 찾을 수 있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더 자주, 편리하게 떠올릴 수 있는 거예요.”
리사는 강조해요.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 맥락을 부여하고, 반복하라고. 결국 내가 의미를 심을 때, 뇌는 “이게 중요해!”라고 신호를 보낸다는 거죠.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 사진을 찍고, 특별한 노래를 틀어보세요. 단서를 많이 남기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제일 중요합니다. 결국 그런 것들만 내 안에 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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